기독교교육/청소년교육

청소년 정체성에 대한 연구

꾸벅준혁 2010. 6. 18. 19:40

청소년 정체성에 대한 연구

Th.M. 최준혁

- 목 차 -

Ⅰ. 서론

Ⅱ. 청소년기와 자아정체성

1. 자아정체성의 의미

2. 청소년의 자아정체감

Ⅲ.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의 자아정체감 연구

1. 모세

2. 세례요한

3. 에스더

4. 다윗

Ⅳ. 결론

Ⅰ. 서론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의 청소년을 단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체적으로 청소년기는 미완성의 시기인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진 시기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고민과 갈등, 심리적 압박감을 가지는 정체성 위기의 시기이다. 특히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의 청소년들은 학업이라는 무거운 짐 아래에 대중매체와 인터넷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들은 세상적인 풍요 속에 물질만능주의의 가치관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에릭슨의 역작 『청년루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제대로 된 신뢰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정체성의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여 극도의 정서적 불안과 갈등을 겪던 루터가 “이신칭의”의 의미를 깨닫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위대한 종교개혁의 지도자로 성장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들도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정립하여, 올바른 세계관과 인생관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본 연구에서는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기본적 내용을 조사하고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이 어떻게 청소년기를 보냈는지 연구하면서 오늘을 사는 청소년들에게 기독교적 자아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데 목적이 있다.

Ⅱ. 청소년기와 자아정체성

1. 자아정체성의 의미

에릭슨(Erikson, E.)은 청소년기의 중요한 심리사회적 위기로써 정체성 대 정체성 혼란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정체성 추구가 특별히 이 발달단계에서 예민해지는 것은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급속한 변화와 도전이 이 단계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에릭슨은 자아 정체성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로서의 나' 사이의 통합 의식이다. 사회적 존재인 개인이 다양화 사회 집단에서 차지하고 있는 지위에 다른 역할들 간에 통합된 의식을 가지는 것이다.

둘째, 과거·현재·미래의 나 사이의 연속 의식이다. 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신뢰감과 안정감을 가지는 것이며, 일관성을 느끼는 것이다.

셋째, 주체적 자아와 객체적 자아 사이의 조화 의식이다.

주체적 자아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자아 도취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고, 객체적 자아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다른 사람들의 눈만을 의식한 나머지 자아를 상실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 두 자아가 조화를 이룰 때, '너와 나' 의 관계가 정립될 수 있다. 넷째, '나는 나다.' 라는 실존 의식이다. '나'인 존재이다. 이러한 실존 의식은 절대적 자유, 자기 선택, 자기 책임과 관련된다.

2. 청소년의 자아정체감

청소년기의 급격한 신체 생리적 변화와 새로운 사회적 압력과 요구 사이에서 청소년들은 이전 단계까지 거의 회의 없이 받아들였던 자기 존재에 대해 새로운 의문과 탐색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변화하는 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나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와 관련하여 청소년들이 직면하게 되는 발달 과제는 자아정체감의 확립이다. 이론에 따라 다소 상이하게 정의될 수 있지만 자아정체감이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확고하게 응집된 느낌으로, 자기 동일성에 대한 자각인 동시에 자신의 위치, 능력, 역할, 책임에 대한 확신이다. 이 점에서 자아정체감은 개인이 앞으로 살아 나가야 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며 사회적 적응을 가능하게 해주는 자아 구조이자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존재의 동일성과 독특성을 지속하고 고양시켜 나가게 하는 일종의 자아 자질이다.

1) 청소년기의 정체감 위기

정체감 획득이란 점진적인 발달의 결과이자 청소년기에 갑자기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감의 문제가 특히 청소년기에 이르러 위기를 맞게 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이 시기야말로 심신에 걸쳐 많은 변화가 동시적으로 일어날 뿐 아니라 미래의 관여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때문이다. 정체감 확립의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자신을 시험해 본다는 점에서 보면 청소년기란 일종의 심리적 결정 유예기이자 타임아웃 시기에 해당한다. 즉, 위기라는 단어의 구성 자체가 그러하듯이 청소년기의 정체감 위기에는 위험을 넘어서서 진정한 자아탐색을 위한 기회라는 의미까지가 함축되어 있다.

모라토리움이란 적극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비록 오랜 기간의 정체감 탐색 자체는 고통스러울지라도 그 결과로 보다 높은 차원의 인격적 통합이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성장과 도약의 시기이다. 반면에 소극적 측면에서 보면, 모라토리움이란 현실적으로 성취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성취를 위해 지속적인 관여를 할 수 없는 경우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고통과 절망감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일부 청소년들은 유예기 동안 자기 존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추지 못한 채 자신 앞에 펼쳐져 있는 무수한 선택 가능성에 오히려 압도되어 버릴 수도 있다. 정체감 혼미야말로 끝내 자기 존재와 자기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 정체감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유예기에 관여의 대상이 너무 많거나 실험적 시도가 빈번할 경우 역시, 역할 확산이라는 또 다른 유형의 혼란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역할 확산과는 대조적으로 고유한 자기 찾기를 포기한 채 조급하게 외부로부터 주어진 제한된 사회적 역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의지가 결여된 채 부모가 요구하는 대로 전통적인 직업적 정체감에 안주해 버리는 청소년 부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체감 유실 현상은 진정한 자아탐색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결코 바람직한 자아 성숙의 모습은 아니다. 한편 실존적 공허에 빠져들어 자아정체감 추구 자체가 표류하며 무실체감을 경험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무실체감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비행이나 범죄 등에 빠져들면서 반사회적인 부정적 정체감을 내재화시키기도 한다. 부정적 정체감을 갖는 청소년들은 부모나 사회의 가치와는 반대되는 가치체계를 내면화시킨 부류에 속한다.

이러한 정체감 위기는 에릭슨에 의하면 청소년기 초기 단계에 경험되기 시작하여, 대략 15-18세 경에 해결되는 것으로 가정되고 있다. 그러나 메일만(Meilman)이 12-24세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정체성 지위를 조사해 본 결과 에릭슨의 가정과는 달리 12-18세 피험자의 대부분이 정체성 혼란이나 정체성 유실을 나타냈으며, 21세 이상이 되어서야 비로소 정체감 유예 상태나 안정된 정체성을 성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위기극복 시기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있으나 결국 청소년기란 자기정의와 자아존중감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스스로의 결정과 관여를 통해 새로운 정체감을 정립해 나가야 하는 시기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즉, 정체감 위기를 맞아 청소년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이 수행하는 역할을 통해 자기를 파악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내고자 애쓴다. 동료 집단에 가입해보는가 하면 역사적 위인이나 주변에 존경받는 인사들 가운데서 동일시의 대상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또한 세상의 선악에 대해 명확한 관념을 제시해 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국가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동조하거나 몰두하기도 한다. 결국 청소년기의 과제는 “효과적인 아동기의 잔여물과 예상되는 성인기의 희망으로부터 중심적인 통일체, 즉 어떤 중심적 관점과 방향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Eriksion, 1964).

한편 뉴만과 뉴만은 청소년기를 두 시기로 나누고 후기 단계에서 개인정체감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초기에 집단정체감 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청소년들은 초기 단계에서 집단정체감 대 소외의 위기를 겪으며 집단정체감을 확립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사춘기로부터 18세 경까지는 신체적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에서 또래 집단으로부터의 인정이 중요해지므로 청소년들은 흔히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집단에 소속하여 정체감을 경험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초기단계에서 지나치게 배타적이거나 편협한 집단정체감을 형성하게 되는 경우 오히려 청소년 후기에 성숙한 개인정체감을 발달시키는 데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이어서 청소년 후기인 18-21, 22세 경에는 개인 정체감 대 역할혼란의 위기를 거쳐 청소년들은 마침내 가족으로부터의 자율성을 획득하고 개인정체감을 성취하게 된다. 이 시기에 부모는 자녀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 청소년의 정체감 지위

마샤(Marcia, 1980)는 청소년들이 다양한 대안을 탐색하는가의 여부, 직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 종교적 이념, 성적 지향 그리고 정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에 근거하여 네 가지 정체성의 지위, 즉 정체감 혼란, 정체감 유실, 정체감 유예, 정체감 성취로 청소년들을 분류했다. 마샤에게 있어서 정체감 획득이란 직업적 목표를 설정하고 개인적 및 정치적 이념체계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청소년기의 정체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위기 개념외에 관여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위기가 의미 있는 대안들 가운데 선택을 고심하는 단계라면 관여는 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선택을 결정한 단계를 뜻한다. 이와 같이 여러 이론들에서 다양한 개념을 통해 청소년기의 정체감 위기를 설명하는 것은 정체감 확립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난국에 부딪치면서 경험하게 되는 혼돈감 뿐만아니라 그 결과적 성취를 동시에 강조하기 위한 시도로 볼 수 있다.

<정체감 지위에 따른 특징>

정체감

상태

특 징

정체감

혼란

정체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으며 정체감 획득을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이들 유형은 정체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미래 삶의 방향을 계획하지 못한 채 적극적인 의사결정이나 관여를 시도하지 않는다.

정체감

유실

부모의 기대나 기존의 사회적 가치를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위기는 회피된다. 이들 유형은 겉으로는 정체감을 확립시킨 것 같으나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에게 적하한 것인지를 독립적으로 의사결정한 것은 아니다.

정체감

유예

의사결정 과정에서 위기의 상태를 경험하지만 적극적으로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정체감 획득을 위해 능동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정체감

성취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확고한 신념체계를 정립한다. 이들 유형은 특별한 목표, 신념, 가치 등에 개인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직업을 선택하고 정치적 이념 체계를 확립한다.

Ⅲ.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의 자아정체감 연구

1. 모세

1) 출생 및 성장배경

모세는 B. C. 1527년경에 민족적으로 매우 암울한 시대에 레위의 아들 고핫의 후손인 아므람과 레위지파 요게벳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모세에게는 위로 형 아론과 누나인 미리암이 있었다. 모세는 그의 이름이 의미하듯이 ‘물의 아들’ ‘건져내다’라는 어원에서 유래된 것을 볼 수 있다. 바로의 공주가 그의 이름을 왜 모세라고 지었을까? 모세의 입양 경로를 숨길 수 있는 이집트 식의 좋은 의미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바로의 공주는 모세가 입양아였음을 일찍부터 드러내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출2:10). 나일 강의 한 모퉁이에서 모세를 발견하고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이로다”(출2:6)라고 외쳤던 공주는 이집트의 유모가 아닌 히브리인의 유모를 찾았고, 그 유모는 공교롭게도 모세의 생모였던 것이다.

모세가 출생했던 시대는 바로가 이스라엘의 인구증가를 막기 위하여 인구 억제 정책으로 히브리인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태어나는 즉시 죽여 버리라는 명령을 한 상황에서 모세가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출생은 축하받기 보다는 가족에게 부담과 근심을 주었을 것이다(출1: 22). 그는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타인들의 눈을 피해 석 달 동안 숨겨 키웠고,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어 보내게 되었다(출2:3). 그때 마침 바로의 공주(애굽의 18대 왕조)의 눈에 띄어 물에서 건짐을 받게 되었고, 좋은 환경에서 유모가 된 생모의 품에서 어린 시절 양육을 받게 되었다(출 2:5-9).

초기 대상관계인 생모인 영향을 받고 자란 모세는 자신을 낳아 주고 젖을 먹여 양육한 요게벳과 모든 좋은 환경 속에서 자신을 양육해준 이집트 왕실의 양모 사이에서 모세는 흔히 입양아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을 겪었을 것이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생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있었음에도 양모가 지어준 이름인 ‘모세’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아 양모의 사랑과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친아들임에도 표현할 길 없는 깊은 애정을 속으로 삭히며, 눈물을 흘리면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에 대하여 수없이 이야기 해주면서 양육해 준 생모 요게벳의 사랑과 영향력은 대단했을 것이다.

대상관계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모세의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크게 영향을 준 생모는 모세를 임신하고 있는 열 달 동안 내내 불안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다. 모세를 낳고도 석 달 동안을 숨겨 키우면서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얼마나 두려움으로 떨었을까?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바로의 공주가 모세의 양모가 되어 왕궁에서 자라게 된 것에 대하여는 안도의 한숨을 지었을 것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이 생모임이 밝혀질 까봐 불안한 감정이 무의식적이긴 해도 모세에게 그대로 전이되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초기 대상인 생모인 요게벳은 모세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히브리인이라는 교육을 은연중에 강조했을 것이다. 시대적 위기상황 속에 바로의 궁전에서 양모의 손에서 사랑을 받으면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하여 혼란과 불안감 속에서 자랐을 것이다.

2) 청소년기와 성인기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로 왕자 같은 대접을 받으며 자란 모세는 내면적으로는 “나는 누구인가? 이집트인인가? 히브리인인가? 여호와를 섬길 것인가? 아니면 애굽의 신들을 섬길 것인가?” 심한 갈등을 하면서 초기와 중기 청소년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스데반이 모세에 대하여 진술하기를 “애굽 사람의 학술을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행7:22)라고 하였다. 바로 왕의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 왕궁 안에서 철저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천문, 지리, 수학, 군사, 율법, 정치 등 그 당시의 최고 학문을 연마하여 왕가의 법도와 생활규범과 예절교육을 받았을 것이고, 유아기 때에는 유모인 생모로부터 히브리인이 섬겼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앙교육과 민족성에 대하여 투철한 정신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모세는 외적으로는 공주의 아들로 왕자 같은 대우를 받으며 애굽의 시민권을 가진 왕족으로 당당하게 살고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강한 동포애와 정의감에 불타 고된 노예생활을 하는 히브리인들이 자기의 동족임을 알고 있었기에 심한 심리적인 갈등을 느끼면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에 대하여 정서적인 불안감과 갈등 속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는 동포애에 대한 표현이 서툴러서 자신의 동족을 학대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애굽인을 살해하는 실수를 저지를 만큼 동족에 대한 애착심이 있었다. 그는 사실이 탄로 나자 두려워서 도망해 피해버린다(출2:14-15).

모세는 동포들을 향한 사랑을 다 풀어내지 못한 채, 미디안 광야에서 공주의 아들이 아닌 이드로의 데릴사위로 철저하게 야인생활을 하게 되었다. 믿음 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에서 히브리기자는 “모세가 장성하였을 때, 모세는 믿음으로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였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다”라고 모세의 삶을 신앙적으로 요약 하였다. 모세가 사십 세가 되는 해에 이집트의 사람을 쳐 죽이고 이집트 궁전에서 도망쳐 나온 모세의 내면세계는 두 어머니에 대한 갈등, 두 민족성, 두 종교, 두 문화적인 갈등 등을 계속 격어야 했다. 그는 히브리 문화, 이집트 문화, 미디안 문화라는 세 가지 문화 속에서 산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40년은 철저하게 히브리 문화적인 모습으로 귀착된다.

3) 모세의 발달학적인 특성

모세는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로부터 심리적 거절감을 느끼면서 자라났다. 아들을 낳으면 태어나는 그 순간에 즉시 죽이라는 왕의 엄한 명령이 선포되었던 시기에 임신을 하였다는 자체만으로도 불안감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생명이 잉태되었다는 것조차 기뻐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라 그의 부모님은 불안에 떨면서 근심했을 것이다. 모세가 태어나서 그 모습이 준수하여 석달동안 숨겨서 양육하였고, 더 이상 키울 수 없다고 판단이 되자 갈 상자에 넣어서 나일 강에 띄워 놓고 마음 졸이며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긴장되고, 두려움과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환영받지 못하고 태어난 모세는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했다. 부모님과 기본적인 신뢰감을 형성해야 할 중요한 시기이다. 자궁 안에서 불안은 나일강에 띄어져 갈상자 속에서 캄캄한 공포 속에 또 한번의 거절감을 경험하게 된다. 부모로부터 거부의 양육태도의 내면아이는 다른 대상을 인정하지 못하고, 밀어내며, 배척하며, 자녀에 대하여 수용적인 범위를 인정하지 못한다. 심리적 거부를 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족쇄로 생각한다. 실제로 고아원이나 양자로 주어 버린다. 모세의 부모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라고 해도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해 임신되는 순간부터 태어나기도 전에 아이를 없앨려고 했을 것이다. 거부의 양육태도를 경험한 내면의 부모는 자신을 거절하는 소리가 있다. 내면아이는 인정과 용납에 대한 욕구가 많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는 거절은 기대조차 않는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 적개심,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게 된다. 난폭함, 파괴적인 행동으로 관계를 망친다. 모세의 부적절한 대처방법(동족의 학대장면을 보고 살해하고 두려움에 도망가 피해 버리는 출2:14-15), 하나님한테 부적절하게 저항하는 모습(출3:11, 13; 4:1, 10,13)에서 거절의 양육태도로 자란 특성이 잘 나타나 있다.

4) 모세의 성격 특성

모세가 경험한 거절에 대한 ‘외상 경험’은 환경이나 타인을 신뢰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주었을 것이다. 왜 자신이 버려져야 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 세상에서 가장 믿었던 어머니에게 버림을 받아야 하는 충격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바로의 공주가 갈대 상자를 열었을 때, “아이는 울고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모세는 모세 오경 중 하나인 출애굽기를 기록하면서 이 부분을 참지 못하고 울컥 눈물이 복받치지 않았을까? 생각되어진다. 젖을 뗀 후에 엄마 품을 떠나 새 엄마에게 가야했을 때에도 모세는 심한 분리 불안과 슬픔을 경험했을 것이다. 모세가 양모에게 적응하는 동안 충격감, 무감각, 분노감, 우울감 등 심리적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호렙 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고 파송하시려고 할 때, 그는 자신에 대한 신뢰감도 없었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마저 느낄 수 없으며,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을 하나님이 파송한 자로 믿어줄 것인가? 회의를 느끼며 거절하는 모습에서 하나님께서 참다 참다 분을 발하실 정도로 신뢰감이 약했다. 이와 같이 장인 이드로의 집에서 사십 년을 머무르는 사십 년 동안 아무런 부르심도 없었다.

5) 모세가 끼친 영향

모세는 유대인들에게 민족적인 자긍심을 심어준 최고의 위대한 지도자이다. 유대인들의 대표적인 인물 중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다윗 등도 있지만, 모세를 최고의 지도자로 본다. 구약성경에는 모세를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자 훌륭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로서 기억되고 있다. 그는 “그 후에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로서 어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성숙한 지도자의 모습을 신명기 마지막 장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는 애굽에서 사십년을 보내고, 사십년을 광야생활에서 미디안 광야 생활과 함께 어우러져서 용광로 속에서 제련되어 나온 순금과 같은 모습으로 그의 성숙된 인격은 바른 신앙관을 보여주고 있다.

모세에게서 배울 점은 그가 과거의 아픔과 좌절, 마음의 상처들을 딛고 일어서서 위기를 극복하며 한 단계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갔다는 그의 적극성이다. 과거의 아픈 경험들을 통하여 노예근성이 남아있고, 신앙적으로 애굽의 종교 영향에서 아직은 벗어나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 십년 동안 이끄는 ‘상처 입은 리더’로 많은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모세가 오늘의 우리에게 아는 모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이다. 시편 90편에서 모세는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인생을 묘사하고 있다.

2. 세례요한

1) 출생 및 성장 배경

세례요한은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중의 한 사람이었던 사가랴와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다. 세례요한이 출생했던 시대적 상황은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 C.27-A. D.14년)가 로마 황제로 제위 하였으며, 팔레스틴 전역은 분봉왕 헤롯(The Great Hrod, B. C. 37-4년)에 의해서 통치하던 시대이었다. 로마 식민지였던 유대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던 시기였고, 종교적으로 매우 타락했던 시기였다. 헤롯은 겉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등 종교적 부흥을 힘쓰는 듯 했으나 유대사회의 최고 지도자인 대제사장직을 자기 권한 아래 둠으로 정치적 도구로써 자기 권력의 방편으로 이용하려 했다. 따라서 종교 지도자들은 강한 정치적 색채를 띨 수밖에 없는 암울한 시대였다.

세례요한의 부모인 사가랴는 이러한 암울한 시대임에도 주의 계명과 규례대로 행하며,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의인이라고(눅1:6)하였으며, 제사장으로서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서 주 앞에 바른 헌신을 다했음을 알 수 있다. 제사장의 전례대로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모든 백성들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는데,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며, 구체적으로 이름까지 “요한”이라고 지명하여 주었다(눅1:9-13). 사가랴는 너무도 갑작스러운 일이 일어나자 그 상황을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당황하게 되자 그러한 반응에 대하여 주의 사자는 표징으로 그를 한시적으로 벙어리가 되도록 하셨다(눅1:20).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은 수태를 못하는 무자하고 나이가 많아 자식은 바랄 수도 없는(눅1:7) 아무런 낙이 없던 중, 아들을 낳아 준다는 소식은 한편으로는 기쁘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웠을 것이다. 노년이 되어 임신을 하게 되어서 과연 건강한 자녀를 낳을 수 있을런지? 염려가 되었을 것이고, 유대 역사상 처음으로 성소에 들어가서 벙어리가 되어 나왔으니 그 당시 모든 백성들이 성소 밖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였으니 소문은 빠르게 확산되어 퍼져나갔고,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수군하면서 이야기 거리의 주인공이 되어 열 달 내내 불안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전적인 개입된 사건이라 하더라도 임신한 엘리사벳 입장에서는 매우 두려웠을 것이다. 성경에도 온 유대 산골까지 그 소문은 퍼져나가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고 한다(눅1:64-65).

온 유대 사람들의 관심과 축복 속에 건강한 아이는 일가친척들이 부친의 이름을 따서 ‘사가랴’라고 짓자는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의 개입을 확신하며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었다(눅 1:63).

2) 청소년기와 성인기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한 요한은 야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은 요한의 유아기 때부터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의 생애에 대하여, 기도하면서 양육했을 것이다. 요한은 그의 잉태되는 순간부터 출산 그리고 그의 이름과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예정 속에 있음을 그의 부모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부모님은 자신들의 자녀이기 전에 하나님의 예정 속에 선택되어진 생명으로서 온 정성을 기울여서 양육을 했을 것이다. 그의 아동기와 청소년기 성장과정 속에서 보여준 예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보면 그의 성장 배경이 어떠했으리라 짐작할 수 가 있다(눅1:80, 2:52). 즉,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음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세례요한은 철저하게 구별된 나실인으로 성장했으며,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절제된 생활과 부정한 것들은 멀리하는 아동기와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청소년 시절은 황량한 광야에서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극히 절제된 검소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을 감당하며 천국복음을 전하는 고독한 순교자의 길을 걸으며,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난 그가 예수님의 공생애가 30세 전후라고 볼 때, 후기 청소년 시기를 주의 길을 예비하는 사역자로서 고독하게 지냈을 것이다.

3) 요한의 발달학적인 특성

세례요한은 태어났을 때는 부모님과 온 마을 사람들, 친척들의 관심과 사랑을 혼자 다 받고 자랐을 것이다. 손이 귀한 자손은 남다른 관심과 기대와 사랑을 받는다. 이런 요한은 유아기 때부터 어머니 엘리사벳의 사랑을 독차지 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요한을 나이 많아 임신하여 5달 동안 숨어 있었으며, “주께서 자신의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셨다고”(눅1:24-25)하였다. 자신의 부끄러운 수치심을 아들 요한이 태어남으로 자신이 채우지 못한 기대와 열망을 아들 요한을 양육하면서 대리 만족을 하려 투사했을 것이다. 아버지 사가랴도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 속에 예정된 삶을 살아가야하는 아들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안스러운 양가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특별한 삶이 예정되어 있는 아들에게 어떻게 함부러 대할 수 있었겠는가? 남다른 애정과 관심은 완벽주의의 양육태도와 유약한 양육태도로 교육했을 것이다. 제사장으로서 엄격한 규율, 절제된 감정표현, 실수도 허용하지 않는 철저하게 구별된 나실인으로 교육하는 것만이 아들이 앞으로 감당해야할 몫이라고 겉으로는 완벽주의의 양육태도를 보였을 것이고, 마음 깊은 곳으로는 유약한 양육태도로 이에 대한 보상심리가 있어서 안스러운 부모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유약한 아이는 외동아이, 허약한 아이, 어렵게 태어난 아이한테 나타나는 점으로 자유분방하며, 즉흥적이며, 매우 버릇이 없고 불안하고 안정감이 없고 부적절한 자신감을 보일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이 최고인냥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무대 체질이 되기도 한다. 부모의 완벽주의 양육태도로 양육 받은 아이의 내면아이는 인정받기위해 희생을 한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목숨을 거는 것 같다. 사랑 받기 위해 집착을 하고, 성취하기위해서 노력을 한다. 요한의 부모의 양육태도는 때로는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한테 인정을 받을까 하며, 자신을 더욱 가혹하고 희생을 하지 않았나? 생각되어진다. 물론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예정된 삶을 살아야 했지만, 한 인간으로서 느껴야 하는 감정은 늘 고독했을 것이다. 부모님 또한 그런 아들을 보면서 유약한 마음을 내리 누르며, 양가감정 속에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4) 요한이 끼친 영향

세례요한이 살았던 시대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신약 시대를 펼쳐나가기 위해 신약시대의 문을 여는 역할을 감당했으며, 구약시대 선지자 시대의 문을 닫는 역할을 요한이 감당했다고 할 수 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다(마11:11). 마태복음 11장 13절에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라고 적고 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수 백 년이 지난 후 등장한 세례요한을 많은 사람들은 그를 메시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자신을 표현하기를 장차오실 메시야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며, 자신은 그 주인의 신발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그 주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겸손한 고백을 하고 있다(막1:7, 마3:11).

세례요한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고독과 맞서 싸우며, 겸손히 감당한 휴먼리스트였다. 잉태되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선택되어 순교자의 삶을 살다간 사람, 철저하게 주인공을 위해 조연의 역할을 소리로서 그림자로서 그의 정해진 삶의 둘레를 벗어나지 않고 살다간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3. 에스더

1) 출생 및 성장배경

기원전 485-464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 여고냐와 백성을 사로잡아 갈 때에 함께 포로로 잡혀온 모르드개는 베냐민 지파의 기스의 증손인 시므이의 손자인 유다백성이다.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인 “하닷사” 곧 “에스더”(에2:5-6)는 베냐민 지파의 후손 아비하일의 딸로서(에2:15) 바벨론이 앗수르에게 멸망한 뒤인 앗수르(페르시아) 제국에서 태어났다. 강제 이민 3,4세로 태어난 그녀는 유대계 페르시아 국민이었다. 에스더의 부모가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에스더를 낳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것으로 보인다. 에스더의 형제나 자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무남독녀로 남겨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녀는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에게 입양되어 딸처럼 성장했다(에2:7).

에스더는 ‘바사’ 즉 페르시아식 이름을 따른 것인데, ‘별‘라는 뜻이고, ’하닷사‘는 히브리식 이름이며, ‘도금양(挑金孃)나무’라는 뜻이다. 이 나무는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구원하심에 대한 비유로 등장한 바 있다(사41:19; 55:13). 도금양 나무의 꽃이 마치 ‘별’과 같은 데서 유래한 듯하다. 에스더의 신앙과 그의 삶이 그 이름의 뜻과 같았다고 볼 수 있다. 에스더의 성장과정을 보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잃었기에 정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다행이 가까운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가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예쁘고 예의 바르게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모르드개는 사촌 동생인 에스더를 자기 딸처럼 양육한 것에 대하여 성경은 말하기를 에스더 2장 7절에 “용모가 곱고(예파트, 토아르) 내면적 인품의 아름다운이다. 아리따운(토바트, 마르에트)외모의 아름다움”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2) 청소년기와 성인기

에스더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모두 잃은 사건은 그녀의 성격발달에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첫 번째 대상인 부모가 없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며, 기본적으로 신뢰감을 형성하는데도 이 세상을 지각하는데도 부정적인 장애가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예쁜 딸을 두고 눈을 감아야 했던 에스더의 부모는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도 죽기 전에 모르드개에게 간곡히 딸을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본다. 모르드개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입양하여 친 딸같이 양육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는 입양아들이 겪게 되는 심리적인 갈등 속에 성장했을 것이다. 삼촌도 아닌 사촌오빠를 아버지처럼 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르드개와 그의 아내가 친딸처럼 양육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친자식들과 관계에서 이질감을 느끼면서 성장했을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정체감 혼란과 우울한 감정과 낮은 자존감 등으로 고민을 했을 것이다. 모르드개 부부의 사소한 말에도 상처가 되어 혼자 속으로 삭히며, 많은 아픔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3) 에스더의 발달학적 특성

에스더에 소개한 모르드개의 모습을 살펴보면, 모르드개는 의지가 굳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주도면밀하고, 엄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에스더를 양육하였던 것으로 짐작이 된다. 에스더 2장 20절 말씀에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명한 대로 그 종족과 민족을 고하지 아니하니 저가 모르드개의 명을 양육 받을 때와 같이 좇음이더라”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강압적인 양육태도로 지시하고, 명령하고, 자신의 생각을 에스더에게 강요하며, 부모의 권위로서 지시, 경고, 통제하고, 잔소리를 한다. 이런 양육태도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의 특성은 의존적이 되기 쉽고, 자신의 내면아이에게 억압을 하며, 순응하는 아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 아이, 자율성이 없고 수동적인 성인아이로 어른들이 좋아하는 아이가 된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갈등이 심하고, 소모되는 에너지 많다. 늘 피곤해 한다.

에스더가 ‘미스 수산’으로 뽑혀서 후궁 수업에 들어가기까지 모르드개가 보여준 관심과 간섭에서도 잘 들어나 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그녀의 민족이나 가족배경에 대하여 비밀에 부치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는 상황에서 후궁 수업을 받는다는 것은 그녀로 하여금,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자칫하면 자신의 민족 배경이 드러날까 봐 마음을 졸이면서 불안해했을 것이다.

모르드개는 매일 후궁 앞뜰을 왕래하면서 그녀의 안부와 정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고자 부단히 애쓴다. 사촌 오빠이며 양아버지인 모르드개는 그녀의 삶의 행로에 대하여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 따라서 그녀의 ‘자기 개별화’의 수준이 높지 않은 ‘성인아이’의 특성과 아하수에로 왕과의 역동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녀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을 만큼 매력을 지닌 여성이었지만, 바벨론 전국 127개의 도에서 뽑혀 최고의 미를 자랑하는 처녀들 가운데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을 있었던 중요한 ‘역동성’은 ‘개별화 수준’에서 찾아볼 수 있다(에2:17).

기원전 5세기 후반부 그리이스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페르시아를 여행한 후 아하수에로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여기에 묘사된 아하수에로는 변덕이 심한 잔인한 독재자였고, 결단력이 약하고 유약한 사람이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4) 에스더가 끼친 영향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너는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전갈을 보낸다. 그때 그녀는 남녀무론하고 왕의 부름이 없이는 왕궁의 안뜰에 들어가면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고 왕이 금 홀을 내밀어야만 살 수 있다는 왕궁의 법도를 이야기한다. 게다가 자신은 왕의 부름을 받지 못한지 삼십일이나 되었다고 대답한다. 그때 모르드개는 다시 전갈을 보낸다. 그녀의 행동에는 유대인 전체의 목숨이 달려있음을 말하며, 그녀가 왕에게 나아갈 것을 다시 촉구한다(에4:13-14). 에스더는 이때 놀라운 결단을 하게 된다. 그녀는 동족과 함께 죽기를 각오하고 모르드개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를 한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 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고아출신인 에스더는 이방인 포로의 몸으로 태어나 왕비가 되기까지 현실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절망의 순간들을 견디어내었다. 한나라의 국모로서 부귀와 영화와 특권 속에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궁중의 음모에 의해 자신의 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직면하게 되자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인식하고 생명을 버릴 각오로 민족을 위한 확고한 결단을 가지고 왕 앞에 나간 것을 본다(에4:16). 이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오는 신앙적인 결단이라고 본다. 유대인을 구원하는 극적인 ‘막판 뒤집기’의 반전을 가져온다.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려는 하만의 음모는 자기가 세운 75피트나 되는 높은 나무 기둥에 매달려 죽고 만다.

에스더는 마침내 왕에게 나가 자신의 출신과 모르드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밝히며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에8:1). 양아버지 모르드개는 금면류관을 쓰고 왕실의 의복을 입고 왕에게 나아간다. 목숨의 경각에 달렸던 유대인들은 기뻐하며, 잔치를 벌이며 구원의 기쁨을 노래한다. 지금까지도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부림절이라는 절기로 지켜오고 있다(에9:22).

또한 에스더는 마지막 부분에서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로 기록된다. 그녀는 더 이상 모르드개의 양녀가 아닌 “아비하일의 딸”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민족과 자신의 가계에 대해 당당히 밝히고 존귀한 여성으로 삶을 살아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으로 사태는 극적으로 전환되고 성도들의 궁극적인 승리와 구원을 잘 예표하고 있다고 하겠다.

4. 다윗

1) 출생 및 성장배경

다윗은 예루살렘의 남쪽으로 약 8㎞ 떨어진 작은 고을로 규모와 지형적인 특성이 그리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마을인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아브라함의 14대손이요, 유다지파 이새의 여덟째 막내아들로서 어려서부터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양들과 벗하여 그들을 산 짐승들에게서 지켜주는 양치기 소년으로 그 용모가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얼굴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랐다(삼상16:11-12).

다윗이라는 이름은 ‘사랑스러운 자’라는 의미인데, 사무엘상 16장 1절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보내시면서 ‘한 왕을 예선(豫選)하였음이니라’이는 히브리원어로 ‘라이티’, ‘기쁨으로 보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뽑은 것을 기뻐하셨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마3:16-17).

다윗이 성장하던 시대적 상황은 매우 암울하고, 불안한 시대였다. 신학적으로도 사무엘이 사사직과 제사장, 선지자의 삼중적인 일들을 감당한 것으로 보면, 역사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였음을 알 수 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왕을 달라고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부르짖었고, 결국에는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사울을 초대 왕으로 기름 부어 왕을 세워 왕정을 수립했던 시기였고, 외적으로는 주변 국가 특히 블레셋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군사들을 모으고, 초대 왕인 사울은 강력한 군대와 무기를 갖추는 강한 군주로서 백성들에게 인정받고자 물불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 했던(삼상17장), 정치적 , 군사적으로 매우 나라 안 밖이 불안한 시기였다. 다윗이 태어난 시기는 사울이 왕이 되어 치리한지 10년째 접어드는 시기로 기원전 1040년경이다.

2) 청소년기와 성인기

다윗은 어려서부터 양들을 돌보는 매우 평범한 목동이었다(삼상16:11).

막내아들인 다윗은 부모님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자랐을 텐데, 아버지인 이새조차도 아들이라고 관심영역에 크게 부각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아들이 8명이나 되어 말째로 태어난 다윗을 외진 들판에서 양들이나 돌보라는 책임을 맡겨, 양들을 맹수들로부터 보호하라는 명령을 하였을 것이라고 가정해 본다. 다윗이 블레셋 장군인 골리앗을 맞서서 용감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도 어려서부터 위험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여 승리한 경험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나갔을 때, 블레셋 군대장군 골리앗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소리를 듣게 되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17:26)하면서 분개한다. 이는 다윗이 ‘사시’는 하나님으로 많은 경험을 한 사실을 말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말을 듣고 사울 왕에게 보고가 되자 사울 왕은 다윗을 부른다. 사울 왕 앞에 선 다윗을 보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골리앗)은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삼상17:33) 한다. 그러자 다윗은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삼상17:34-35)하며 왕을 설득하여, 어린 소년 다윗은 조롱하는 골리앗 앞에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 17:45)고 외치며, 물매와 돌로 그 이마를 치니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져 죽였으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돌아온다.

이렇게 소년 다윗의 용기는 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많은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용맹스럽고, 민첩함, 탁월한 전략은 자기에게 맡겨준 일에 최선을 다해 양을 돌보는 일에 충성을 다하며, 평소에 꾸준히 물매 돌을 던져 명중시키는 맹훈련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윗은 청소년 시절 양들을 돌보면서 수금을 타며, 대자연을 창조하신 사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삼상16:18)자신의 외로운 감정을 달래며 지냈을 것이다. 시편에 기록된 많은 작품들은 그의 예술성 감각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가장 강한 면을 지니고 있고, 영적으로도 매우 예민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으며, 감정의 기복도 매우 심해서 그러한 감정들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로 승화되어 표현했을 것이다.

3) 다윗이 끼친 영향

다윗은 한평생을 양을 치는 목자로, 적국과 싸우는 장수로, 리더십이 뛰어난 왕으로, 섬세한 시인으로, 아름다운 음악가로, 유명한 작가로 일생을 보냈다. 다윗이 이스라엘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면, 통일 왕국을 세웠고(삼하5:1-5),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과 싸워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었고,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증명해 보였고(삼상17:45-54),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법궤를 옮겨와 군사· 정치· 종교적 중심지로 구축하였다.

사울 왕이 다윗을 살해하려고 음모를 꾸며, 쫒아 다닐 때, 10년을 도피생활하면서 3차 추적사건 때, 엔게디 황무지의 동굴 사건은 다윗의 신실성과 경건성을 돋보이게 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사울은 일국의 왕으로서 블레셋의 침략에 대한 방책을 마련하지 않고 정적인 다윗의 생명을 해하기 위해 온 정열을 쏟고 있었다. 여기서 제시된 엔게디 동굴 사건은 지금까지 사울은 일시나마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인식하게 된 것을 보여주고, 다윗의 왕권을 인정하게 된다. 한편 다윗은 자신의 생명을 노리는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세워진 왕이라는 점에서 그의 생명을 해하지 않았던 다윗의 행동은,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과 율법의 권위를 인정하며 살아가는 참된 신앙인의 모습을 모범적으로 제시해 주고 있다(삼상24:1-22).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뚜렷한 자는 환경과 사정을 초월하여 절대 선을 이루어 나간다(창39:7-23). 이와 비슷한 사건이 26장의 4차 추적 사건에도 재연되는데 이 두 사건을 통해 다윗의 신앙관이 얼마나 바른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었는지 알 수 있다.

다윗의 오랜 세월을 도피생활하면서 고난을 받았으나 결국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통일왕국의 정치적 종교적 기반을 든든히 세우는 업적을 이루고, 주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예비하였으며, 그의 인생을 마감할 때,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은혜를 찬양하므로 미래에 완성될 공의로운 메시야 왕국을 예언했다는 점에서 ‘선지자적인 찬양’이라 평할 수 있다. 이렇게 영적인 창양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한 것으로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제시해 주셨던 ‘다윗 언약(삼하7:8-16)’에 기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미천한 신분임에도 자신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신실히 이행해 오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신의 시선이 현재와 이 땅이라는 제한된 정황 속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가계를 통해 출생하게 될 공의로운 통치자와 그분의 사역을 예지할 수 있었으니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Ⅳ. 결론

청소년기의 자아정체감 형성은 어린 시절의 경험을 배재하고 설명할 수는 없다. 한 인간의 자아정체감형성은 유전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을 뿐만아니라 환경으로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특히 유아시절에 경험한 많은 사건들은 성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자아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오늘을 사는 청소년들의 자아정체성이 건전하고 기독교적이며 성서적이기 위해서는 유아시절부터의 기독교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교육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에게도 기독교교육을 통하여 건전하고 바람직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청소년도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성서를 통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교육되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자아정체성에 대하여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점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성경에 나타난 인물들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발견했는지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본 연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