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조직신학
[평신도를 위한 알기쉬운 신학강좌-7. 교회 : 새로운 피조물] ③ 사이버 교회
꾸벅준혁
2017. 9. 22. 13:49
인터넷이 없으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현대인의 모든 활동이 인터넷과 연결돼 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에 상당수 기독교인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사이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다. 오늘은 지역교회에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지, 또 사이버 교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겠다.
왜 교회에서 예배를?
교회의 본질을 안다면 교회에 참석해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 교회의 예배는 혼자 인터넷으로 드리는 예배와는 다르다. 최소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교회는 ‘공동체(communion)’로서 그리스도의 몸이다(엡 1:23).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는 분리되지 않는다. 교회공동체는 현재 우리가 가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 양식이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간 동안, 그리스도는 교회공동체로 현재한다.’(본회퍼) 한 개인이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며 신앙의 결단을 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지만 이 경우를 ‘교회’라고 하지는 않는다.
각 개인은 자신의 실존을 통해 신앙을 고백한다. 그러나 신앙을 고백하는 그 개인은 그냥 단순한 자연인 ‘개인’이 아니다. 한 ‘개인이 고백하고 결단하는 신앙조차 교회적’인 것이다.(바르트)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교회라는 공적이고 책임적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한 인간의 신앙고백은 각 개인을 통해 일어나는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이 개인은 교회와 분리된 사적(私的)인 인간이 아니다. 신앙은 언제나 ‘교회-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진다. 신앙은 혼자서 가지는 ‘어떤 것’이 아니다. 신앙은 그리스도가 머리되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고백되며 자란다.
둘째, 교회는 ‘성례전(sacrament)’이다.(고전 11:23∼26) 성찬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다. 선포에서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들려지듯 성찬에서는 그리스도가 가시적으로 임재한다. 성찬은 예수님에 대한 기념이나 상징이 아니다.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임재가 지금 현재적으로 일어난다. “예수님의 성례전적 존재는 그의 특별한 의지나 속성이 아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교회 내의 성례전으로 실존한다.”(본회퍼) 현재하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성찬을 통한 것이다.
성찬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중심에 있다. 초대교회에서도 성찬은 예배의 핵심이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박해의 시대에 목숨을 걸고 예배에 참석했고 성찬에 참석했다. 그들은 혼자 집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순교를 각오하고 교회로 걸어가서 직접 성찬에 참여했고, 거기서 그리스도를 만났던 것이다!
셋째, 교회는 ‘교제(Koinonia)’이다. 교회는 건물이나 공간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교제가 일어나고, 신자들과의 사귐이 일어나는 곳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단수로서 ‘내’가 아니고, 복수로서 ‘신자들’을 의미한다. 교회를 의미하는 ‘선택된 백성’은 언제나 신도들의 교제를 전제로 한다. 신자들의 교제는 부분적인 교제가 아니라 전인격적인 교제다. 전인격적인 교제는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동시성을 바탕으로 신자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교회라는 동일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신자와 그리스도의 교제가 일어나고 동시에 신자들 상호 간에 교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혼자서 드리는 인터넷 예배에서 전인격적인 교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온라인에서 영적으로만 교제하는 것이 아니다. 영과 육의 통일체인 ‘몸’으로서, 한 인격으로서 교제하는 것이 신자의 사귐이다. 때로는 실족한 형제에게 용기를 주고, 고통 받는 자를 위로하며, 함께 즐거워한다. 신자의 사귐은 몸과 몸이 마주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어 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교제이다(행 2:46∼47).
최근 한국에는 교회를 떠나 사이버 교회를 떠도는 ‘가나안 성도’가 갈수록 늘어난다. 교회의 당위성만을 말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품을 수 있도록 기존 교회의 변화도 필요하다. 기존 교회에 실망한 많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병행과 보완
지상의 교회에 대한 강조가 사이버 교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 교회가 지상의 교회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지상의 교회와 병행해 보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사이버 교회는 교회가 갈 수 없는 곳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교회가 활동할 수 없는 곳에서 선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병환으로 교회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이나 직업적인 이유로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갈 수 없는 사람도 사이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나아가 현대의 다원화되고 글로벌한 문화적 상황에서 사이버 교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신자들이 지역 교회에 매일 모일 수는 없다. 그리고 교회는 사회와 격리돼서는 안 된다. 사이버 교회는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고, 문화적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유용하다. 사이버 교회를 사회활동과 접목하여 힐링, 교육, 나눔을 확대하는 것도 좋다.
나아가 지역 교회와 사이버 교회를 결합하는 새로운 모델도 필요하다. 현재 지역 교회는 제도적으로 경직되고 비활동적 공간이 되어 간다. 현대교회의 위기다. 새로운 교회 모델을 통해 성경의 정신을 사회에 스며들게 만들고, 역동적인 활동이 가능할 때 교회의 중요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사이버 교회가 성경의 치유적 요소를 활용해 사회 정화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고, 영성훈련과 성도의 교제를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봉사와 실천을 사회적 운동과 연결하는 작업도 모색해 봐야 한다. 21세기는 교회에 매우 힘든 시기일 것이다.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며, 그중 하나는 반드시 사이버 교회와 결합된 형태에서 찾아질 것이다.
김동건 교수<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425555&code=23111618
왜 교회에서 예배를?
교회의 본질을 안다면 교회에 참석해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를 알 것이다. 교회의 예배는 혼자 인터넷으로 드리는 예배와는 다르다. 최소한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교회는 ‘공동체(communion)’로서 그리스도의 몸이다(엡 1:23).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는 분리되지 않는다. 교회공동체는 현재 우리가 가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 양식이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간 동안, 그리스도는 교회공동체로 현재한다.’(본회퍼) 한 개인이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리며 신앙의 결단을 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할 수 있지만 이 경우를 ‘교회’라고 하지는 않는다.
각 개인은 자신의 실존을 통해 신앙을 고백한다. 그러나 신앙을 고백하는 그 개인은 그냥 단순한 자연인 ‘개인’이 아니다. 한 ‘개인이 고백하고 결단하는 신앙조차 교회적’인 것이다.(바르트) 그렇기에 어떤 사람이 신앙을 고백한다는 것은 그 자신이 교회라는 공적이고 책임적인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가능한 일인 것이다. 한 인간의 신앙고백은 각 개인을 통해 일어나는 형태를 취한다. 그러나 이 개인은 교회와 분리된 사적(私的)인 인간이 아니다. 신앙은 언제나 ‘교회-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진다. 신앙은 혼자서 가지는 ‘어떤 것’이 아니다. 신앙은 그리스도가 머리되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고백되며 자란다.
둘째, 교회는 ‘성례전(sacrament)’이다.(고전 11:23∼26) 성찬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하다. 선포에서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들려지듯 성찬에서는 그리스도가 가시적으로 임재한다. 성찬은 예수님에 대한 기념이나 상징이 아니다.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임재가 지금 현재적으로 일어난다. “예수님의 성례전적 존재는 그의 특별한 의지나 속성이 아니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교회 내의 성례전으로 실존한다.”(본회퍼) 현재하는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성찬을 통한 것이다.
성찬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중심에 있다. 초대교회에서도 성찬은 예배의 핵심이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박해의 시대에 목숨을 걸고 예배에 참석했고 성찬에 참석했다. 그들은 혼자 집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다. 순교를 각오하고 교회로 걸어가서 직접 성찬에 참여했고, 거기서 그리스도를 만났던 것이다!
셋째, 교회는 ‘교제(Koinonia)’이다. 교회는 건물이나 공간이 아니다. 교회는 하나님과 교제가 일어나고, 신자들과의 사귐이 일어나는 곳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단수로서 ‘내’가 아니고, 복수로서 ‘신자들’을 의미한다. 교회를 의미하는 ‘선택된 백성’은 언제나 신도들의 교제를 전제로 한다. 신자들의 교제는 부분적인 교제가 아니라 전인격적인 교제다. 전인격적인 교제는 시간과 공간의 ‘동시성’을 의미한다. 즉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동시성을 바탕으로 신자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교회라는 동일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신자와 그리스도의 교제가 일어나고 동시에 신자들 상호 간에 교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혼자서 드리는 인터넷 예배에서 전인격적인 교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온라인에서 영적으로만 교제하는 것이 아니다. 영과 육의 통일체인 ‘몸’으로서, 한 인격으로서 교제하는 것이 신자의 사귐이다. 때로는 실족한 형제에게 용기를 주고, 고통 받는 자를 위로하며, 함께 즐거워한다. 신자의 사귐은 몸과 몸이 마주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어 가는 것을 즐거워하는 교제이다(행 2:46∼47).
최근 한국에는 교회를 떠나 사이버 교회를 떠도는 ‘가나안 성도’가 갈수록 늘어난다. 교회의 당위성만을 말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품을 수 있도록 기존 교회의 변화도 필요하다. 기존 교회에 실망한 많은 무리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병행과 보완
지상의 교회에 대한 강조가 사이버 교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 교회가 지상의 교회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지상의 교회와 병행해 보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사이버 교회는 교회가 갈 수 없는 곳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교회가 활동할 수 없는 곳에서 선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또 병환으로 교회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이나 직업적인 이유로 정해진 시간에 교회에 갈 수 없는 사람도 사이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나아가 현대의 다원화되고 글로벌한 문화적 상황에서 사이버 교회는 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신자들이 지역 교회에 매일 모일 수는 없다. 그리고 교회는 사회와 격리돼서는 안 된다. 사이버 교회는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고, 문화적 프로그램을 운영하기에 유용하다. 사이버 교회를 사회활동과 접목하여 힐링, 교육, 나눔을 확대하는 것도 좋다.
나아가 지역 교회와 사이버 교회를 결합하는 새로운 모델도 필요하다. 현재 지역 교회는 제도적으로 경직되고 비활동적 공간이 되어 간다. 현대교회의 위기다. 새로운 교회 모델을 통해 성경의 정신을 사회에 스며들게 만들고, 역동적인 활동이 가능할 때 교회의 중요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사이버 교회가 성경의 치유적 요소를 활용해 사회 정화에 나서는 것도 필요하고, 영성훈련과 성도의 교제를 사회적으로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봉사와 실천을 사회적 운동과 연결하는 작업도 모색해 봐야 한다. 21세기는 교회에 매우 힘든 시기일 것이다. 교회의 위기를 극복하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며, 그중 하나는 반드시 사이버 교회와 결합된 형태에서 찾아질 것이다.
김동건 교수<영남신대 조직신학, 저자연락은 페이스북 facebook.com/dkkim222>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7425555&code=23111618